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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73년생 모여라

2014-05-2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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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빨강불량삐삐 추천12 비추천0

2014. 05. 27. 화요일

말괄량이빨강불량삐삐








 






안녕? 난 '말괄량이빨강불량삐삐'라고 해. 그냥 '불량삐삐'라고 통일해주길 바래.


아무튼 난 73년 생이고, 같은 해에 태어난 너희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그냥 반말로 할게. 나보다 늦게 태어난 사람들이나 나보다 일찍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존대를 해야하는 불편함이 있거든. 태어난 게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고 초면에 언제 태어났는지를 물어보곤 자기보다 늦게 태어난 사람이면 무조건 말을 까는 사람 별로야. 그냥 우연찮게 일찍 혹은 늦게 태어난 것 뿐이잖아. 게다가 나보다 일찍 태어난 사람들에게 존대를 해야 하는 이유또한 모르겠어. 우리나라는 뭔가 무조건이 있는 거 같애. 난 무조건은 웃긴 말이라 생각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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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말이 짧다?


아무튼 이 글은 나와 하필이면 같은 해에 태어난 너희들에게 하는 것이기에 무조건 말을 놓을게. 사실 동갑들은 말을 까기 쉽잖아. 그게 내가 너희들에게 이 글을 쓰는 이유야. 여기까지 읽어서 알겠지만 내 말이 논리적이지는 않아. 그것도 전혀.


내 소개부터 해야 하나? 난 그냥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야. 결혼은 운이 좋아 좋은 사람하고 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애들도 쑥쑥 잘 낳아 건강하게 잘 크고 있고 남편은 평범한 직장인에 그냥 평범한 집에 나도 가끔 아르바이트하면서 그냥 평범한 삶을 살고 있어.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아줌마가 드럽게 살림을 하기 싫어하고 또 못해서 오늘도 전기밥솥에 밥이 곰팡이가 슬어있더라. 남편이 알려줘서 알았어. 아줌마라 수다에는 강하지만 또래의 아줌마들 만나기는 드럽게 게을러서 잘 못 만나고 안 만나. '어느 학원이 좋다. 어느 학원 선생님이 무슨 학교를 나왔더라'라는 카더라 정보를 얻을까봐 그냥 동네아줌마들은 잘 안 만나거든 좀 무서워서.


내가 집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청소도 안 해서 먼지와 잡동사니가 가득한 집에서 편안히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는 거야. 잠도 많이 자면서. 애들이 나한테 붙여준 별명이 그래서 '소파늘보'야. 엄마는 소파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면서 나무늘보는 잠을 22시간 잔다나 뭐라나.


소싯적에도 데모는 안했어. 뭐 친한 친구가 데모주동자(이런 표현써도 되나?)여서 주워들은 이야기는 많지만 그건 뭐 그 친구 경험이지 내 껀 아니고 워낙 소심하고 무섬증을 많이 타서 그 근처에 얼씬도 안했다가 맞겠지. 중간생략할게. 뭐 주저리 주저리 쓰려면 쓸 말이 있겠지만 그건 너희들이 나하고 나중에 친해지면 다 알 것들이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어. 나 밥해야 하거든. 곰팡이 슬은 전기밥솥은 씻어서 쌀이라도 얹혀 놔야지 저녁이라도 먹지 안 그래? 그래서 이제부터 할 말을 할게.


너희들은 우리 나이가 어떤 나이라고 생각하니? 그니까 너희들은 긴 인생에 지금 우리들의 나이가 어디쯤 와 있다고 생각하냐고. 어려운 말인가? 좀 더 유식한 말로 하면 너희들의 사회적 위치가 어디쯤이라고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지만 만약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이제는 '책임을 질 나이가 되지 않았나' 이렇게 막연히 대답할 거 같애. 책임이라는 말이 좀 두리뭉실하긴 하지?


지난 5월 18일 일요일에 난 안산에 갔어. 단원고등학교 자원봉사팀 페이스북에 진도 자원봉사를 신청했는데, 되었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야. 일단 저질러 놓고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남편이 뜨악~~하는, 그리고 포기하는 표정이 교차되면서 허락을 하길래 잽싸게 아침에 남편 차를 타고 안산으로 갔어. 그리고 버스에 올랐지. 진짜 안산에서 진도까지는 멀더라. 9시에 출발해서 3시쯤 도착했으니까 말이야.


문제는 도착하고 나서였어. 진도는 체육관과 팽목항 두 곳으로 자원봉사팀을 나눴는데 말이야. 관리자가 그러시더라 되도록이면 아줌마가 팽목항으로 가는 게 좋다고. 거기 검안소(사실 시신은 안 봐, 아니 못 봐. 그냥 대기실이라고 보면 돼)가 DNA 검사를 기다리는 곳인데 가족들이 젊은 사람보다는 아줌마가 좋다고 하신다고. 우시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아줌마가 편하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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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 내심 겁났다. 거기만은 피하고 싶었거든. 그래도 내 나이가 있는데 손을 들었어. 관리자 아저씨가 날 아가씨로 봐주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결과는? 내 바람과는 달리 한 마디 묻지도 않으시고 그냥 자연스럽게 난 아줌마가 되어서(새삼스럽게) 팽목항으로 갔어.


겉으로 보기에도 그냥 남들이 아줌마 아저씨로 봐주는 나이야. 우리 나이는 말이야. '아픔을 공감하겠지'하는 그런 나이라고. 그걸 난 책임이라고 말하고 싶어. 책임이란 공감을 해야 완수하는 그런 것이니 말이야. 그럼 이렇게 남의 아픔에 공감 할 책임있는 73년생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기에 난 이렇게 글을 쓰는 걸까?


들어봐봐. 난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너희들처럼 그날도 난 늘 그렇듯이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트윗을 하다가 속보가 떴다길래 아무 생각 없이 티비를 켰어. 11시쯤이었던 거 같애. 애들을 구조하는 걸 보려고 그랬던 거 같애. 근데 화면에는 그냥 뒤집어져 수면 위로 조금만 보이는 배 모습 그대로 저녁 때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거야. 그냥 멍하더라.


자막은 자꾸 바뀌었던 거 같애. 처음에는 전원구조라고 그랬다가 실종자가 있다고 그랬던 거 같고... 아나운서 목소리는 잘 안 들리고 난 딴 일 하면서도 화면은 멍하니 본 거 같애. 바뀌지 않는 그 모습 그대로를. 남편이 왔던 9시쯤에야 정신이 든 거 같았어. 그 안의 애들은 어떨까 짐작을 할 수조차 없었지. 그냥 막연히 '왜 애들을 구조하지 않지?'가 다였던 거 같애.


그날 이후로 9시면 안 보던 뉴스를 틀어. jtbc를 보려고 말이야. 손석희 아저씨는 잔인하게도 매번 내가 봤던 그 날 이전과 이후를 보여주면서 그 안에 살아있던 애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더라. 매일매일 반복해서 차츰 더 생생하고 리얼하게 말이야. 난 또 그걸 보기가 죽기보다 싫지만 내가 그러지 않으면 배 안의 애들에게 안 되는 일일거 같아 매번 반복해서 보게 됐어. 그걸 벌써 35일 째 반복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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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시간이 지나면, 일주일이 지나면, 한 달이 되면 덜해질 줄 알았어.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애들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그런 모습들이 말이야. 아니, 내가 안산합동분향소에 가면, 그저께처럼 진도에 자원봉사를 가면 덜해질 줄 알았다고. 남들은 그러잖아. 애도를 하면 나아지고 옅어지기도 한다고 말이야.


근데. 근데 말이야. 나한테는 안 그랬어. 아마 사람들마다 각자 애도의 방법이 있겠지만 잔인하게도 나에게는 그런 방법이 아니었다는 걸 가슴 속이 말해주고 있었어. 촛불을 드는 것, 기부나 후원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아니라고 느끼고 있었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지. 허우적대다가 난 우연찮게, 아니 필연으로 그걸 찾았다. 아니 찾은 거 같애. 난 생존자들이 잘 살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 내가 뭘 해야 한다는 걸 말이야.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건 모르겠어. 다만 그래야 한다는 거지. 왜 있잖아 너희들도 아는 느낌. 사랑이란, 세상에 좋고 멋진 사람들이 많지만 내게 오는 사랑은 그냥 단지 내 사람이어서. 그 이유 뿐이잖아. 그런 느낌이야.


그래서 난 생존자들 중에서 내가 위로 할 수 있는 한 사람에 집중하고 싶어. 만약 너희들이 함께 해 준다면 너희들도 그런 한 사람씩에 집중해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언가를? 그냥 막연한 그림은 있어. 그것도 들어봐봐 .



난 이 모임을 준비하면서 세 가지 그림을 그렸어.


하나는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 읽어봤지? 그 주인공이 벼랑에서 애들을 위해 호밀밭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어했잖아. 난 그 소설이 그냥 좋았지만 안전하게 지키는 게 꼭 필요할지 의구심을 가졌더랬는데 지금은 알게 되었어. 그런 거잖아. 애들을 저렇게 어이없게 우리 눈앞에서 보낼 수는 없는 거잖아. 그게 안전인가봐.


두 번째로 그리는 그림은 말보다는 빵이야. <대성당>의 제일 끝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라. 교통사고로 쓰러진 아이를 둔 부모에게 빵가게 주인은 빵을 가져다 주거든. 난 할 수 있다면 빵을 만들어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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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들어주는 것이야. 내가 좋아하는 과레스키라는 아저씨가 있어. 이탈리아 아저씨인데 그 유명한 <돈카밀로와 패포네>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신 분이지. 그 아저씨의 책 중에서 <까칠한 가족>이란 책이 있는데 거기서 '꿈의 포로'라는 부분이 있어. 아내가 꿈을 꾸는데 어느날 그렇게 말을 해.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자전거가 고장나서 걸어가고 있다고. 너희는 만약 아내나 남편이 이런 꿈을 꿨다고 하면 뭐라고 했을 거 같애? 무슨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냐고 쓸데 없는 말 하지 말고 밥이나 하라고 하지 않았겠어? 난 그랬을 거 같은데.


근데 이 남편은 어땠는지 알아? 근처 자전거 가게로 아내를 데려가 자전거 고치는 법을 가르쳐서 손에 익을 때까지 연습을 시켰어. 그러고 며칠 뒤 물어보지. 요새 어떤 꿈을 꾸냐고. 그니까 아내가 웃으면서 '자전거가 고장났는데 스스로 고쳐서 지금은 잘 타고 다닌'데.


이 세 가지가 다 막연하지? 그냥 나만 공상을 하곤 해. 막연히 빵집을 열어서 애들에게 맛있는 빵도 먹이고 한 공간에는 애들이 실컫 울게 하는 그런 곳을 마련하는 그런 공상말이야.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 너희들과. 동갑이라 특별한 너희들과 말이야.


그날 만날게. 한 명이라도 동참하는 이가 있으면 좋겠다. 나 혼자보다는 우리가 더 힘이 나는 법이니 말이야. 만약 내 바람이 너희들에게, 혹은 생존자나 유가족들에게 가지는 않더라도 이 말은 전하고 싶어.


진짜로 힘들 때에는 힘들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아.


그럴 때는 보이는 것, 느끼는 것, 심지어 가족들을 보는 것조차도 힘들기만 해.


그러면서 왜 나는 가족들까지 힘들게 하는 건지 별의 별 이상한 생각들이 다 들지.


그럴 때 난 너희들이 스스로 혹은 그런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너무너무 힘들다는 느낌이들면


그냥


생각을 멈추고,


행동을 멈추고,


그 자리에 있으라고.


그 자리에 있으라고.


그러면 시간이 흐른 어느 순간


그 자리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일 거라고. 


그러면 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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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야. 사실 이 말 말고도 너희들 하고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말이야. 내가 좀 바빠서 말이야. 곰팡이 슨 밥솥도 설거지 하고 밥도 해야 하고. 


그럼 이만. 안녕.


모임은 다음과 같아


모이는 날 : 2014년 6월 첫째 주 월요일(6월 2일)

모이는 시간 : 저녁 7시

모이는 장소 : 벙커 1 지하


갖고 올 것 : 동갑모임이고 첫날이니 꼭 주민등록증 혹은 운전면허증 지참하길 바래. 너희들 주민등록번호를 적을 건 아니고. 그냥 73년 생임을 확인할게. 다른 건 다 손으로 막아도 돼. 그리고 2만 원 정도 들고 와야하지 않을까? 내가 모임을 안 해봐서 말이야.


모임에서 할 것 : 앞으로 생존자들 소식을 어떻게 알 것이며, 우리가 어떻게 그들과 함께 할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하기로 해.


추가 :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마사오도 온데. 마사오 봤는데 목소리보다 깨더라 얼굴이. 제법 구염성있던데... 목소리는 사실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매력있어서 그렇지. 투박하잖아. ㅋㅋㅋㅋ



PS. 73년 생이 아닌 친구들이 혹시 올까봐 하는 말인데 음... 그럼 73년 생 민증을 갖고 오면 고려해볼게. 언니 오빠들 꺼 아니면 이모 꺼를 꼭 지참하길 바래.








 

 

 

 말괄량이빨강불량삐삐


편집 :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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